저는 아무것도 안 건드렸습니다

지난 글 끝에 이렇게 썼습니다.

“난 아무것도 안 건드렸는데.. 갑자기 안 돼.”

이 말, 저만 하는 게 아니더군요. 컴퓨터 앞에서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거짓말이 아닙니다.

진짜로 안 건드린 게 맞습니다

어제까지 잘 되던 게 오늘 안 됩니다. 그 사이에 한 일이라곤 컴퓨터를 껐다 켠 것뿐입니다.

해야 할 일들이 밀려오고 있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말을 안 들으면 멘붕이 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혹시 내가 뭘 잘못 눌렀나?”

저도 그랬습니다. 3개월 동안 그랬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 컴퓨터는 제가 안 건드려도 계속 바뀌고 있었습니다.

뭐가 바뀌었냐면

지난 글의 범인을 다시 떠올려보면 이렇습니다.

하나. 프로그램이 스스로 업데이트합니다.

제가 쓰는 프로그램은 알아서 최신 버전으로 바뀝니다. (나도 모르게요..) 저는 승인한 기억도 없습니다. 기본 설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고 하네요.

그러다 어느 날 프로그램 본체와, 거기 붙어 있는 부속 기능의 버전이 서로 안 맞게 됐습니다. 제가 한 건 없습니다. 각자 알아서 업데이트하다가 어긋난 겁니다.

둘. 다른 걸 설치했더니 환경이 바뀌었습니다.

이게 지난 글 범인의 진짜 출발점이었습니다.

언젠가 다른 프로그램을 하나 설치했는데, 거기에 접속 담당 프로그램이 하나 딸려 왔습니다.

저는 그 프로그램을 설치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컴퓨터가 원래 있던 것 대신 딸려온 걸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딸려온 쪽이 한글 폴더를 못 읽었죠.

셋. 부속 기능도 따로 업데이트됩니다. 넷. 윈도우도 업데이트됩니다.

즉 제가 가만히 있어도 서로 각각 계속 뭔가가 바뀌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습니다

예전에는 안 되면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게 미쳤나.. 내가 혹시 멀 잘못했을까.. 한번만 봐주면 안될까..”

저의 감정도 이렇게 변해가곤 합니다.

그런데 결국 다 같은 질문입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이 질문은 답이 안 나옵니다. 잘못한 게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 질문을 붙들고 있으면 자기 탓만 하다가 포기하게 됩니다.

지금은 이렇게 바꿔서 묻습니다.

“뭐가 바뀌었지?”

질문을 바꾸니까 확인할 게 생겼습니다.

  • 최근에 업데이트된 게 있나?
  • 최근에 뭘 설치했나?
  • 정확히 언제부터 안 됐나?

AI에게 물을 때도 이 세 가지를 같이 알려주면 훨씬 빨라집니다. “안 돼요”보다 “어제까지 됐는데 오늘부터 안 되고, 그저께 뭘 하나 깔았어요”가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하나 배운 것

이번에 설정을 고치면서 원본을 백업해뒀습니다. 파일 이름 뒤에 날짜를 붙여서 하나 복사해두는 것뿐인데, 그게 있으면 마음이 편합니다. 최악이어도 되돌아갈 자리가 있으니까요.

되던 상태를 하나 남겨두는 것. 이게 제가 이번에 배운 것 중에 제일 쉽고 제일 쓸모 있는 습관입니다.

자동 업데이트, 켜야 할까 꺼야 할까

여기서 헷갈리는 게 하나 있습니다.

블로그를 만들면서는 “플러그인 자동 업데이트를 꼭 켜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동 업데이트 때문에 3개월을 고생한 셈이고요.

모순 같지만 기준이 다르다고 합니다.

자동 업데이트
밖에 열려 있는 것 (홈페이지·서버)켠다. 안 하면 공격당하고, 깨져도 손해가 작다
내가 일하는 도구 (작업 프로그램)신중히. 깨지면 일을 못 한다

밖에 열린 건 안 고치면 위험하고, 내 작업 도구는 갑자기 바뀌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저는 이걸 3개월 겪고 나서야 구분하게 됐습니다.


혹시 지금 “분명히 아무것도 안 건드렸는데” 싶은 게 있으시다면, 아마 정말로 안 건드리신 게 맞을 겁니다.

내 컴퓨터는 내가 안 봐도 계속 바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자책하지 마시고 질문만 바꾸시면 됩니다.

“내가 뭘 잘못했지”가 아니라 “뭐가 바뀌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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