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물어야 할지 모를 때는 그냥 다 보여줍니다

회사에서 쓰는 10년쯤 된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습니다.

직원 개인 PC에 설치해서 쓰는 방식이고, 웹이 아니라서 밖에서는 못 봅니다. 조회도 마음대로 안 되고 다운로드는 특히 불편합니다.

이걸 웹으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첫걸음부터 막혔습니다. 그 안에 든 데이터를 AI에게 어떻게 줘야 하는지를 모르겠더군요.

검색이 알려준 길

네이버에 검색해봤습니다.

일단 백업이라는 폴더에 Access 파일이 있어서 물어보니, 테이블 구조라는 걸 추출해야 한다더군요. 그러려면 별도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설치했습니다. 당연히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라 쓸 줄 몰라서 한참 헤맸습니다. 그래도 겨우겨우 구조라는 걸 뽑아내어 csv라는 파일로 저장했습니다.

프로그램 이름은 지금 기억도 안 납니다. 그때는 그게 정답인 줄 알았으니까요.

뿌듯한 마음으로 AI에게 줬습니다.

“자료가 잘 맞지 않습니다”

안 됐습니다.

데이터가 어긋나고, 특히 자료와 첨부파일이 매칭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며칠 들인 게 헛수고였습니다. 그때 기분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기분이 약간 들었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던지..’

자포자기로 한 일

포기하기 직전에 혹시나 싶어 이렇게 했습니다. AI는 거의 준 전지전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요.

그 프로그램이 설치된 폴더를 그냥 캡처했습니다.

무슨 파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뭘 봐야 하는지도 모르니까 그냥 화면을 여러 장 찍어서 AI에게 보여줬습니다. 말이 안 통하니 그냥 내가 보라는 걸 보라는 심정으로요.

“자. 이걸 줄 테니 함 보고 이야기해줘..”

그랬더니 AI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DB가 Access 파일이 아닙니다. 폴더 내 000.SQL 파일을 주셔야 합니다.”

한동안 화면만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틀린 재료를 정성껏 준비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랬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원본 데이터베이스는 Access가 아니었습니다. Access 파일은 직원들이 편하게 보라고 변환해서 제공하던 사본이었습니다.

저는 사본을 원본이라고 믿고, 그 사본에서 구조를 뽑느라 며칠을 쓴 겁니다.

검색은 저에게 “Access 파일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알려줬습니다. 정확한 답이었습니다. 질문이 틀렸을 뿐입니다.

시키는 대로 SQL 백업 파일과 첨부자료를 줬더니, AI가 그 오래된 프로그램을 웹 화면으로 거의 그대로 옮겨줬습니다.

설명을 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설명을 포기해서 된 겁니다.

그래서 배운 것

이 일 이후로 저는 막히면 이렇게 합니다.

설명하려고 애쓰지 말고, 보여줍니다.

  • 폴더를 열어서 화면 캡처 (여러 장이어도 됩니다)
  • 에러 메시지는 요약하지 말고 전체를 복사해서 붙여넣기
  • 프로그램 화면은 그냥 스크린샷
  • 파일 목록, 설정 화면, 뭐든 눈에 보이는 것

지저분해도 괜찮습니다. 정리해서 줄 필요도 없습니다. 제대로 정리할 수 있는 상태였으면 애초에 막히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왜 이게 통하는가

전에 [좋은 상사처럼 일을 시키라고] 썼습니다. 자세히 설명하고, 예시를 들고, 참고자료까지 챙겨주라고요.

그런데 그건 내가 뭘 시켜야 하는지 알 때 쓰는 방법입니다.

지금처럼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정성껏 설명해도 틀린 설명이 됩니다. 저는 며칠에 걸쳐 아주 정성스럽게 틀린 재료를 준비했습니다.

이럴 때는 순서를 바꾸는 게 경험상 좋은 것 같습니다.

질문을 만들어서 주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걸 다 주고 질문을 찾아달라고 하는 겁니다.

“이게 필요하신가요?”가 아니라 “제 상황이 이런데, 뭐가 필요하세요?”

그다음부터 막히면 설명을 그만둡니다. 폴더를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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